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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에 대한 고찰...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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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에 대한 고찰...

Guk developer 2021. 6. 9. 01:13

 고등학교 시절, 자리 바꾸는 날은 반복되는 지루한 수험생활 속 소소한 즐거움을 선사하는 하루였다. 모두가 본인이 원하는 자리에 선정되기를 소망하였고 제비뽑기를 하는 시간에는 정말 시장판에 온 것 같이 교실이 시끌벌쩍 하였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선생님에 눈에 잘 안 띄는 뒷자리, 아름다운 풍경이 내다보이는 창가 자리를 소망했던 것과 달리 3년 동안 내가 가장 앉고 싶었던 자리는 단 하나, 바로 교탁 앞자리였다. 앞자리에 앉는 것에는 여러 가지 장점이 있다. 아무래도 선생님의 시선을 곧이곧대로 받다 보니 수업에 집중할 수 있는 유인이 되어주는 동시에 선생님의 말씀, 판서도 정확하게 정리할 수 있다. 나름 공부를 열심히 하고자 하였던 나에게 교탁 앞자리는 이러한 조건만으로도 충분한 매력을 제공하였지만 내 교탁 앞자리 집착의 가장 큰 이유는 다른 곳에 있었다. 바로 앞자리에 앉으면 선생님을 제외한 다른 누구의 뒷모습도 볼 수 없다는 점이었다.

 

 ‘비교’는 마치 양날의 검처럼 우리에게 작용하는 것 같다. ‘비교’라는 도구를 잘만 활용한다면 우리가 인간적으로 또 직업적으로 성장하도록 자극하는 주요한 동력원이 되어준다. 그러나 동시에, 잘못 사용한다면 우리를 절망과 우울의 나락으로 떨어뜨려 버리는 무시무시한 놈이기도 하다. 우리는 의식이든, 무의식이든 끊임없이 우리 주변의 타인을 관찰하고 우리 자신과 ‘비교’하는 작업을 수행한다. 그 과정 속에서 우리는 때로 무의미하고 공상적인 싸움 속에 우리를 맡겨 버리고서는 정작 가장 소중한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다. 그 누구도 우리를 타인과의 결투장에 올려놓지 않았음에도 우리의 뇌는 가상의 경기장을 제작해 얼른 결투에 참여하라 손짓한다. 설령 그저 재밋거리로 가상의 결투에 참가했다고 해보자. 경기가 설령 패배로 끝나더라도 어디까지나 가상의 게임이며 경기를 지켜본 관중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우리는 어리석게도 패배에 몸부림치며 절망하며 자신을 자책한다. (때로는 무의미한 승리에 취해 자부심에 빠지기도 한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가! 도대체 왜 이런 바보 같은 심리적 현상을 우리는 경험하는 것일까?

 

 기본적으로 ‘비교’는 비교하는 2개 이상의 대상이 같은 선상, 종류일 때 진정 가치를 갖는다. 또 같은 숫자일지라도 ‘10원’과 ‘1m’를 비교할 수 없듯이 대상 간의 교집합이 넓어야 한다. 같은 사람이라도 우리는 자라오면서 모두 다른 경험, 생각을 지닌 완전한 개인으로서 구별된다. 즉, 우리가 ‘비교’라는 행위를 함으로써 의미 있는 결과를 이끌어 낼 만한 적정 대상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이야기이다. 앞서 언급했던 가상의 무분별하고 무의미한 비교는 우리가 이러한 점을 인식하지 못해 발생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모두 자신만의 고유한 방향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러나 우리는 가끔 이것을 잊어버리고 다른 사람의 기준에 맞추어 우리를 평가하고 또 자책하고 실망하는 듯하다. 나 자신만의 고유한 기준, 방향을 찾아내고 또 잃어버리지 않고 유지하는 것이 잘나고 행복한 사람이 넘쳐나는 세상 속에서 나름 잘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해주는 처세술이 아닌가 싶다.

 

 고등학교 시절, 내 앞에 앉아 수업에 경청하며 열심히 공부하는 아이의 뒷모습을 나는 차마 쳐다볼 수 없었다. “그 아이가 나보다 더 열심히 하고 더 좋은 점수를 받을 것 같다”라는 불안감이 내 마음을 지배해 나 자신을 고문하고 있었다. 그런 고문을 이겨내지 못해 찾은 피난처가 바로 ‘교탁 앞 맨 앞자리’였고 잠시나마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살아남기 위해서 남의 어깨를 짓밟고 올라가야 하는 수직적 관계가 아닌 모두 각자의 고유한 방향을 지니고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는 수평적 관계가 내 앞에 펼쳐있음을 느끼고 내 소중한 피난처이자 작은 감옥이기도 하였던 ‘앞자리’에게 짧은 이별인사를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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